낮에 몇 시진을 꾸벅꾸벅 졸고 방석이 깔린 긴 의자에서 낮잠을 자고 나니, 밤에 눈이 말똥말똥 해지고 좀이 쑤셨다. 낮에 깨어 있는 시간을 늘리려고 약의 복용 횟수를 줄였는데도 별 소용이 없었나보다. 매장소는 결국 잠 들기를 포기하고는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한참동안 이부자리에서 잠을 청하려고 뒤척인 탓에 려강이 곱게 빗겨준 머리카락이 흐트러졌고 몇 가...
3. 차가운 불꽃 소택이 위치해 있는 장질 거리는 금릉에서 가장 넓고 인파가 많이 몰리는 거리 중 하나로, 십여개의 큰 점포와 인파를 겨냥한 찻집 그리고 저택들이 연이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었다. 가두가 워낙 크고 넓어서 같은 구역에 위치해있음에도 정왕부에서 소택까지 오는데 마차로도 한 시진이 족히 걸린다. 왕부와 소택 사이에 거리가 꽤 먼데다가 정생은 ...
2. 맨 얼굴새벽이 다 되어서야, 매장소는 제 것이 아닌 침상에서 눈을 떴다. 언제라도 의원이나 시중드는 자들이 그의 병세를 확인하고 치료를 쉽게 하게끔, 매장소의 침실은 따로 문이나 휘장 없이 사방으로 트여 있었지만, 지금은 시야에 자줏빛 휘장이며 천장의 무늬까지 소택의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매장소는 처음에는 몸을 굳히며 긴장했지만, 곧 상황을 판단하고는...
1. 길고도 긴 밤어두운 밤을 잔뜩 배불리 먹은 초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물어졌다. 촛불의 빛이 흐느적거리며 서재를 덮으면서 졸음이 나무로 만든 반월검처럼 정왕의 눈가를 묵직하게 눌렀다. 졸음을 쫒아보려 손가락으로 검을 치워 보아도, 쉽사리 집중력이 돌아오지 않는다. 똑같은 고비를 몇 시진 째 넘기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뻐근한 뒷목을 뒤로 젖히고 가볍...
랑야각이 언제부터 이 험난한 랑야산에 터를 잡고 기둥을 세우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는지, 천하의 수많은 정보를 사고 팔고 질문지를 내민 자들에게 값을 치르게 하고 답을 내어 주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각주가 열 명이 넘도록 바뀐 이 강호 정보기관의 역사가 길고도 깊음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강호를 재패하는 방파가 수도 없이 바뀌고 사계절이...
당신만을 위한 선물 도원관을 드나들고 심지어 숙식까지 해결하는 손님이 늘어가자, 유비는 간만에 팔을 걷어부치고 도원관 청소를 시작했다. 도장을 쓸고 닦는데서 멈추지 않고 창고나 빈 방에 들어가서 물건을 옮기고 먼지를 털고 청소기를 돌리느라 만 하루가 넘게 걸렸다. 우에취! 마스크를 썼는데도 기침을 참을 수 없는 지 유비의 재채기 소리가 연달아 들렸고, 그런...
2.그림 실력이 조금만 좋았더라도, 그의 모습을 종이에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붓을 든 손은 그럴 재주가 없었기에 정왕은 대신 머릿속으로 단 한번 만났을 뿐인 사내를 떠올렸다. 오전 공무를 모두 마친 후에 시문을 베껴 쓰면서도 정왕은 그의 푸른 옷자락과 검고 긴 머리카락, 우뚝 선 콧대를 떠올렸다. 오만불손한 말투와 퉁명스러운 표정이 눈에 선했다. 7류 친...
구안산 행궁에서 돌아온 이후, 몸이 예전같지 않다고 느꼈다. 이따금씩 가슴에서 따끔거리는 통증이 느껴졌고 손가락이 둔해져 보고서에 첨삭을 달 때마다 획을 긋기 어려워 죽간에 글자를 다시 쓰는 일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쉬지도 못하고 반란의 뒤처리며 조정에서 올라오는 보고까지 처리하다 보니 심신이 피곤하여 그러겠거니 짐작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공사가 다망...
*통판 및 유료공개 요청하신 분들이 계셔서 어찌 해야 하나 계속 고민했었습니다ㅠㅠ 회지로 뽑았을 때 20페이지 정도라 통판 하기 애매해서 유료 공개로 진행합니다. 감사합니다. 혼서지(婚書紙) - 예황이 매장소를 원하지 않으리라고 짐작한 건, 매장소의 오판이자 임수의 오만이었다. <샘플 페이지>
문턱을 지나 정왕의 서재 안으로 들어서면서 찰갑(札甲)의 금속 부속이 철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등을 꼿꼿하게 새운 채 무엇인가를 읽고 있는 주군의 모습이 제일 먼저 보였다. 전하, 하고 부르며 예를 갖추자 정왕이 음...하고 낮은 소리를 낸다. 정왕부 참군 열전영은 주군의 얼굴과 서탁 위에 진열된 서류, 초대장을 번갈아 응시했다. 황자라면 응당 초대장이며 ...
정왕 소경염이 그 남자를 만난 건 정왕부에서 가장 근거리에 있는 큰 길에 위치한 저택 근처였다. 예부에서 일하는 한 관리의 집인 저택 정원 담벼락 너머 뿐 아니라 담 바깥에도 심어진 꽃나무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가지가 둥글게 휠 지경이었다. 정왕부의 정원에도 색색의 꽃이 만발하였지만 이 집 꽃의 화사함만 못하였다. 매사 무심하고 담백한 정왕이 무심코 그 ...
@eiosolu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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